오늘 하루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날마다 하는 일들이라서 습관적으로 일하셨습니까?
아니면 날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기쁘게 일하셨습니까
인간이 말입니다
습관이라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던 금방 익숙해지는 것이 인간이기도 하고요
금방 실증내는 것이 또한 인간이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어찌나 내 안에 있는 내 마음속에 그리도 많은 습관과
체질과 성격등이 내재해 있는지 저는 날마다 느끼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일부 어떤 사상가들은 인간을 일컬어 우주의 축소판이다 라는 가설과
동시에 인간을 통하여 무언가를 찾는 연구를 그리도 많이 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근데 그것이 어떻게 보면 일리가 있는 듯 착각할 때가 많다는 겁니다
이 작은 도팍 (머리빡 뺀토 대가리 등등) 에서 별 별 생각이 다 나온다는
사실이고요 그 생각에 따라 행동화 되는데 하나의 습관이 되어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 변화 간다는 것이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이렇게 인간이 변화해 가는 과정을 목사님이나 신학자나 경험에 의한 통박꾼이나
서로 뜯어 마추어 보면서 성경에서 말하는 사도바울의 내면을 사알짝 들춰보면
역시 모두가 약간식 다른 체질을 가지고 있는 결론이 나온다고 이 비전문가는
말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런줄 아십니까
저 같은 비전문가들이 이렇게 말하면 교만하다는 전문가님들이 나오기 때문에
대답을 달리 해야 합니다
최대한 겸손의 극치를 보여햐 하는데
이러한 말투도 교만에서 나온다고 목사님들이 말슴을 하셔버리니까
도대체 어떻게 말을 못하겠습니다
이번 시해석을 통하여 전문가님들 한 말씀 드리겠는데요
저는 교만이라는 단어와 겸손이라는 단어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답니다
아무생각없이 아는 대로 들은 대로 본대로 체험한대로 쓰는 것이니
이해해 주시면 감솨하겠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예수님이 제자들이
그동안 예수님 쫄쫄 다라다니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대로 말하지 않았으면
사도행전의 역사가 기록되지도 않았고
복음서들도 기록되지 않았으며 진리를 떠나 하나의 소설과 같은 이야기로만
전해지지 않았을까 하는데요
입에서 나오는 말을 해야 그 안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저 철딱서니 없는 인생들을 거두어서
저런 제자들이 나오고 성도가 나오고 하나님의 자녀로써
예수의 제자로써 성령의 능력가운데서 사랑을 고백하며 빛의 사자들이여
어서 가서 복음을 전파 하라 찬송가를 부르며
그렇게도 나오지 않던 새벽기도를 나오기 시작하고
성가대를 서기 시작하며 시키지도 않았는데 차량봉사를 하지 않나
교회 무슨 일이 생기며 기도와 물질로써 헌신하고 블레셋군사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여 손가락질을 할 때
쟁기질하던 사울이라도 함께 힘을 합하여 아자! 가자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여 싸우기도 하고 악한 골리앗 같은 세상의
풍파속에서도 말씀의 검과 버려진 돌을 자기안서 역사하시는 기초돌로써
견고한 성을 쌓고 시내에서 흘러 나오는 생수를 먹으면서
화이링~~~~~~ 외치며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노래하는 자들이 나왔을까 어느정도 알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꼭 눈으로 직접 보고 시험해 보고 함께 동고동락 해봐야 내가 그대를 알겠노라
말하는 의심많은 도마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서
형제들이 서로 연합하여 동거함이 그렇게 허벌나게도 아름다운지
그 모습이 아론의 수염과 어느 전문가님의 머리에서 빛나는 광채와 같이
너무나 멋있고 귀하고 귀하도다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죠?
아무튼 인간의 습관이야기가 나와서 말이 옆으로 샌 것 같은데요
쉬면 더 쉬고 싶고
일하면 더 욕심이 나기도 하고 ...
환경속에서 익숙해진 그 짧은 시간들속에서의 여러 경우 여러 모양
여러상태의 일들가운데서도 자신도 모르게 그 속에서 안주하려는 마음
이 있다는 겁니다
이러한 현상을 이쁜 용어로 써보면 좋을 것 같은데 역시 생각이 나지 않는 군요
모든 인간의 마음은 그러한 삶가운데 있는 자신에게서 떠나
보다 나은 꿈과 소망을 갖고 있지만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찌할수 없는
연약한 상태에 거하여 살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때 인간이 가지고 있는 꿈과 소망이 그것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처음사랑과 나중 사랑에 대한 시를 해석할 때
반응이 다르지 않을까 하는데 요즘 신앙생활하시는 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워낙 날마다 묵상 하며 성경공부를 많이 하시기 때문에
그냥 서로 통하지 않을까 합니다
1절 입니다
"처음사랑보다
나중사랑이 더 큰 사랑이기를 원합니다 "
이 구절을 보면 이 작가의 신앙이 잘 나와 있습니다
교회를 다녔던 다니지 않았던 그 마음속에 어렷을 때부터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고 의식할 때이던 그렇지 못할 때이던 수시로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렷을때 성당에도 나가봤고
교회도 나가봤고
때에 따라 빵도 얻어 먹고 과자도 얻어 먹으러 가고
기도 합시당~~~~~ 선생님이 외치면 하나님 예수님 감사합니다
기도했던 기억를 떠올리면서 아하!~~ 그때 간식을 주던 하나님이라는
의식 도 있었을 것이고 철이 들어 가면서 알게 모르게
다녔던 교회에서의 말씀들과 심심할 때 읽었던 성경구절들 등등
여러가지 영향을 받지 않았나 혼자 생각해보는 가운데
나이가 먹은 지금 신앙생활을 시작했을때와 지금 시간의 상태를 비교해 보면서
하나님에대한 묵상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때 그때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사랑
처음의 모르던 사랑
그리고 이제는 아는 사랑
함께 영원히 서로안에서 하나가 되어 가는 사랑
어찌나 머리속이 뭔가 꽉차 있는지
끄집어 내려면 쪼간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이어서 합시다
'비전문가의 비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파와 오메가의 사랑해석 셋 (0) | 2005.12.02 |
---|---|
알파와 오메가의 사랑 해석 셋 (0) | 2005.11.30 |
처음과 나중의 사랑 하나 (0) | 2005.11.28 |
32 사랑의 다양성 해석 여섯 (0) | 2005.11.26 |
32사랑의 다양성 해석 다섯 (0) | 2005.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