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열번째 시간이 다가왔슴다
원래 혼자 놀면서 글쓰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공개를 하나 비공개를 하나 전혀 제약을 받지 않는 생명으로써
일부에서 생명을 가지고 계속된 시험을 하다가 된통 깨지고 있음을 봅니다
아무초록 생명가지고 장난하시는 학자님들이나 박사급 여러분
그리고 전문가님들이 없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의 손은 바꾸는 손입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구속에서 해방으로
무에서 유의 소망으로
연약함에서 강함으로 "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장난하는 것은 나쁜 어린이입니다
철없는 애들이 불장난으로 임신을 한다던가 거시기를 하는 경우도 봅니다마는
아담과 하와가 만드신 하나님이 둘이 하나되게 짝지어 주므로
머시기해서 잉태된것이 우리 생명이므로 하나님이 짝지어주지 않은
남과 여 께서도 혼전 거시기를 절제해 주시고 순결을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 가시고
정자를 만나기 위해 그토록 긴 시간을 기다려온 난자의 인내를
굽혀 살피사 기다리는 신랑이 아닌 이상한 대상들에게 마음이 끌리거나
강제로 팔림을 당하는 일이 없기를 기도 하는 바입니다
오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살펴 보겠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들에게 잘 다스려 잘먹고 잘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굽어 살피사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심판하시고 보응하신다는 말씀이
몇천년 건너뛰어 어둠에 쌓였던 이 나라 이민족을
여러가지 요소들에게서 해방시키시고 이제는 그동안 많이 기다렷으니
너희들의 영혼에 눈을 뜨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다는 표현을 신학적으로는 말씀 못드립니다마는
예를 들어서는 엇 비슷하게 시를 쓴 작가의 마음에 마추어서
쓸수는 있습니다
예를 들면 병원이라는 곳을 인간의 힘을 빌어서 반드신 하나님이
환자들만 멍~~~하니 있는 그곳에 하나님의 손길이 임하시면
어떻게 될까요
빛이 있으라 하실 때 어둠이 걷히고 밝은 빛이 비추고
해가 있으라 하시니 해다 뜨고 달이 있으라 하시니
달이 있음과 같이
너의 영혼을 살리신 이가 가로되
너를 부른 나를 기억하라 너희들을 나를 알지도 못했고
불러도 대답도 없었고 또 언제 불렀냐고 말들이 많은데
내가 종일 손을 펴고 너희들을 부르고 사인을 보내지 않았느냐
라고 말씀하신다면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 때에 스쳐 지나갔던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던
일들을 기억해 낼 것입니다
어렸을 때
학교 다닐 때
직장 생활 했을 때
버스를 기다릴 때
축구를 찰 때
아플 때
기쁠 대
슬플 때 등등등
그동안 어둠속에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흔적이 하나둘씩 떠오르며
하나님은 없으며 하나님은 거짓말 쟁이이며
하나님이 어디있냐고 말했던 자신의 일들이 떠오르며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영적인 실체를 보게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예루살렘을 떠나 시골로 가던 제자들이 말을 걸던 분이 예수님임을
알아보게 된것과 같은 이치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에디오피아 내시가 성경을 읽다가 깨달음이 온것 역시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며 아담이 죄를 짓고 나무뒤에 숨어 있을 때 아담을 찬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 까지라도 벌거벗은 몸을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이
바로 지금 현대 21세기의 하나님이라고 봐도 될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되도록 이면 비전문가로써 이런 이야기는 안하려고 하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추측성 통박에 의한 해석이므로 그러는 것입니다
하지만 작자는 그렇게 생각하고 믿고 있으므로 그 믿음이 잘못되었다면
하나님께서 알게 해주시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살체만이 有 라고 말할수 있는가의 문제일까요
아닐겁니다
믿음이라는 실체도 있으니깐요
막상 이렇게 해석을 하고 보니
뭔가 모르게 무쟈게 강물같이 흘러 들어오는 것이 있군요
전혀 소망이 없는 곳
절망이 있는 곳에서
빛이 없는 곳에서
희망이 생겼을 때
무에서의 유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꿈한번 제대로 꿔보지 못한 심령이
어느날 갑자기 달력속에 있는 예수님의 얼굴을 봤다면
이거 역시도 유가 아니겠습니까
황량한 사막같은 곳
목마른 사슴같이 갈급함으로 시냇물을 찾아 두루 찾아 다녀 보지만
물 한방울 찾을길 없어 애타는 마음으로 방황하고 유리할 때
갈길을 밝히 보이시는 주 에수 그리스도가 이땅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구룩한 씨하나가 생명되어 첫 열매될 때
이거 유 아니겠습니까?
텅빈 내마음속에 하늘의 만나로 가득차게 되고 생명의 향기를 풍길 때
이거 유입니다
가만 근데 유씨는 우리 교회에도 있습니다
같은 유라도 뜻이 전혀 달리 해석되는 경우가 있는데
심판하시는 분들은 공평하고 정정당당 하게 선을 잘 그어놓고
경기에 임하게 해야 되는데 무에서 유를 창조 하시는 하나님이
선을 위하여 이루어 가시는 일들을 보면서도 선을 긋지도 않고
경게에 경계를 삼지도 아니하고 선을 행하지 아니한다면
심판으로써 유할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 되는데
그렇다고 이러한 유를 향하여 돌을 던진다던가
태클을 건다던가 비판을 하는 자들이 만약 있다면
이런유는 기도로 해결을 해야 한다는 사랑의 손의 말슴이 있으니
우리 오늘 여기서 유하면서 햇던 말들 가슴에 꼿히는 은혜가 임한다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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