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문가의 비평

고난주간의 재조명 1

알오시끝 2011. 4. 20. 09:45

기독교 사순절 고난주간를 지나고 있습니다

 

벌써 수요일이 되었군요

 

기독교의 하나의 절기라고 볼 수가 있죠

요즘21세기에도 사명자들도 많은 것 같고 각종 희생과 헌신을 통하여  인류의 평화를 위하여

공헌을 하신 분들도 많은 것 같은데

그 와중에  겉과 속이 다른 사이비 사명자들도 살짝 낑겨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모두가 예수그리도의 성품을 좇아  그 본을 따르려는 마음의 실천들이 가상하기는

합니다

여기서 본 이라는 단어에 주목을 해야 합니다

본을 받으라고 해서  영화에 나오는 본시리즈를 연상해서 인지  그저 물고 물리는

스파이 전쟁속에서 피를 흘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보복을 일삼고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으며

질서를 바로 잡고자 하는 논리를 전개하시는 분들도 종종 있는 것도 같은데

이건 아닙니다

 

어떤 곳에서는 그 예수의 흔적을 좇아  적어도 일주일만이라도 그 고난의 여정에 동참하고자

기도하고 여러모양속에서 마음을 같이 하여 참여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특정 프로그램이던 오직 성령안에서 간접체험을 하던  마음을 같이 하는 가운데

새롭고 놀라운 십자가의 깨달음을 얻는다면  그림자인 절기를 통해서라도 올해의 부활절은

뜻이 있지 않나 하네요

 

인간은 꿈이 있어야 합니다

그 꿈을 성취하게 위해서  어떤 프랜을 기획하고 거기에 마추어  행동하게 되있죠

그 꿈이 대선을 거친 대통령이냐  아니면 자기 지역구를 위하여 토지공사이던 주택공사를

옮겨 와서  국토지역균형발전에  한몫을 하느냐  라는 꿈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늘의 별들이  모두 대한민국을 비추고 있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3성만이라도  앞으로 영원히 비추어 줄 수 있도록 만드는 기업을 세우는 것이

꿈이 될 수도 있겠지요

 

삼성과 3성은 비슷하지만 카피가 아닙니다

아마 애플사에서 내 생명블러그를 제소할수는 없을 겁니다

 

참 실제로 분당에서는 꿈을 위한 도전이 시작되는 것도 같습니다

 

예수의 꿈은 인류 평화였습니다

 

우선순위가 이스라엘이 먼저 였죠

이 이스라엘이 알게 모르게 형제간의 난으로 인하여 수 천년동안 난리도 그런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믿음의 조상격인 아브라함의 이중 플레이에서 시작된 것이죠

퍼스트 여인 사라

세컨드 하갈

 

그 자식들  이삭과 이스마엘

 

이복사이에서 이루어져 가는 수많은 일들을 마감하고 웃어라 이스라엘아  로 귀결되는

해피엔딩을 위한 꿈의 도전이 바로 예수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처음에는 예수도 한쪽에 치우쳐 일방적인 변호를 하셨지만

말귀를 못알아 듣는 그들의 편협적인 사고와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를 초래하며

워낙 돈들을 좋아하다 못해서 사랑하는 가운데  먼저 손을 내밀려고 하는 화해의 제스취를

취하지 못하기에  마음을 돌려 버리셨다는 역사적인 증거들이 남겨져 있기도 합니다

 

결국은 당신이 죽어야만이 너희들이 살겠다 라는 결심속에서  예수의 십자가를 지시기 위한

행보가 시작된 주간이 바로 고난주간이 되겠는데  바로 주일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거룩한 성을 향하여 그 보잘 것 없는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성을 올라가십니다

원래 이 거룩한성을 누가  노래하느냐에 따라서  그 맛이 다르죠

JK김동욱이가 부르느냐  꽃을 머리에 단 선데이가 부르느냐

신이라 불리우는 나는 가수다 팀이 부르느냐  그것도 아니면 위대한 탄생을 예고하며

현애탄을  건너온 권리세가 부르느냐   태권이나 청강이가 부르느냐

다르다닌깐요?

 

테너 베이스 메조 소프라노 바리톤  성악가 솔리스트들이  부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또 성전에서 꽃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6팀 7팀이 부르기도 하는데  이 날은 예수를 위하여

놓은 그 꽃들을 뿌려줘야 합니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라는 싯구도 있잖습니까

개나리 진달래도 많습니다만

 

물론 그 행위들은 거짓없는 진실함으로 행해야 되죠

겉으로는 찬송인데  속으로는 형식이 된다면  결국  예수를 배신하고 십자가 지게 만드는

범인이 당신이 될 수 밖에 없다는  당위성이  생명심리학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돌도 잘 던져야 합니다

스므쓰 쓰리 스톤이라고 아시련지요

저는 아직도 그 돌들의 해석을 못하고 있습니다만

기회가 되는대로 영어미인과 합력하여 비전문가 비평을 하는데 써먹도록 하지요

 

아무튼 예수께서는  어떤 은혜를 받으셨는지는 확실히 몰라도 그 거룩한 성을

바로보면 눈물을 흘리십니다

인성과 신성사이에서  오고 가는 그 무엇이 아니었나 통박은 굴려 봅니다만

그 눈물이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묘~~~~한 시간차가 있음은 분명합니다

 

요즘은 연기잘하는 분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요

이론고 실제가 다르듯이  연기는 연기 일뿐 따라하지 말라는 구호가

이때 생기지 않았나 합니다

 

연기같은 실제적인 실천이 본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둘째날의 여명이 시작되는데

일단 성전이 청결되듯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시고  그 가시는 길을 따라가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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