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문가의 비평

뿌리는 사람들과 거두는 사람들

알오시끝 2007. 10. 12. 16:24

가을이라서 그런지 블러그 환경도 서서히 낙엽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군요

처음에 그 씨를 뿌린 자가 있기에 나무가 자라고

오색빛깔로 반짝이는 요염한 자연의 자태속에서  그림처럼 영숙이하고 철수하고

저렇게 사랑을 속삭이기도 하나 봅니다

 

낙엽을 타고 다니는 두 연인은 몸무게를 빼기 위해 얼마나 피나는 땀을 흘렸을지

낙엽하나에 실려 잡아 땡기는 응력을 역학적으로 계산할 필요도 없이

인간의 본능에 의하여 자연속으로 빨려 들어가 노니는 가을의 자연스러움이

이 비전문가의 불러그에도 함께 한다는 사실에  뿌린자와 거두게 되는 그 당사자가운데

하나인 저역시 무쟈게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즘 유행되는 단어

"~~~스럽다" 라는 말이 있죠

 

신학교에서는 "탈레반 스럽다 "라는 말이 유행이라고 하고요

인터넷 싸이트게시판에서는 "딴나라당 스럽다 "라던가

"열당스럽다"   라는 신종 유행어가 사용되고 있음을 봅니다

 

워낙 급속하게 바뀌고 변화되기 때문에 곧 "신당스럽다"라는 말이 나오게 되겠지요

 

후보가 선출되게 되면 이름을 넣어 거시기와 머시기 스럽다라는 말로

공방전을 벌일 것 같습니다

 

제가 오늘 말하고자 하는 것은 "뿌린자와 거둔자가 다르다" 라는 구절과 함께

"탈레반 스럽지도 못하다" 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마태 13장에 보면 예수님의 말씀 씨뿌리는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또 여호수아 이십네장에 보면  15절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라는 말씀이 나오죠

 

그 바탕이 무엇이냐의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그러니까 요즘 많이 사용하고 있는 자기정체성의  문제라는 거죠

 

"니 꼬라지를 알라"의 소크라테스가 있습니다

 

탈레반들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아는 것같더라구요

목적이 있고 목표도 있습니다

방법과 그 수단의 문제가 제기 되지만 일단은 자신들을 안다는 것이죠

물론 일반 적으로 세상적인 관점에서  제가 정의를 내린 것이므로  이 정의는

잘못된 정의라고 말할수 있지만 오로지 나의 목표는 비전문가로써  오늘의 제목에 대하여

책임지고 궁시렁 거리던지 통박을 굴리던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써내려가

글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는 나의 정직한 정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앞서기에

그 생각에 따라 실천할 뿐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자들을 위한 교육정책이 잘못되었다고 말씀들은 많이 하지만

그 근원에서 부터 성장한 뿌리와 줄기들과 잎사귀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도 못하는 자들에 의하여 나에 대한 교육정책을 말한다는 자체가 저는 솔직히

껄쩍지근하고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마음에서 흘러 나오는 생각과

행동들이 "탈렌반스럽지도 못하다"라고 말하고 싶은 겁니다

 

씨를 뿌리는 자들은 따로 있습니다

뿌린 당사자들이 거두어야할 열매들을 전혀 다른 자들이 받아 먹고

그 열매의 선악간의 영양분을 섭취하며

자라온 체질속에서의 유전자들로 인하여  서로 화합하고 사랑으로 하나되어 믿고

나아가야할 관계들이 분리가 되고 시기와 다툼속으로  임시로 뿌려놓은 씨의

열매들로 인하여  뿌린대로 거두게 되는 시간들을 맞이 하고 있다는 사실에

권세는 하나님께 나온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게 합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비전문가도 글을 쓰는 가운데 다시 한번 되씹어야 이어지는

난코스를 걷고 있으나 전문가들이야 잘하시겠지요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는 여호수아의 말이 있습니다

 

누구를 높여야 하는지는 누구에 의해 지금까지 지내온지를 안다면

자기방어나 자기피알보다 차라리 그 택한 대상을 말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합니다

 

높여주면 같이 높아가는 원리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요

높여준다고 항상 높아지는 것이 아님은 바로 죄 많고 욕심많은 인간이기 때문이요

높일수록 더불어 나를 높여주며 영원히 변치 않는 신실한 마음을 가진 그 대상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 오늘날 그 한편만 택하는 자들에게는  권세도 주고  명예도 주고 물권도 주고

영권까지 주시며  가장 적합한 그 자리에 앉게 해주신다는데    씨를 뿌린 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겉으로만 빙빙 돌다가 지나가는 새에게 빼앗겨 버리는 돌같은

마음으로  노래하지 못하는 백성들을 대신하여 굴러다니는

또 하나의 돌을 들어서라도 노래하고 말하게 하심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합니다

 

탈렌반스럽지도 못한 자들의 변호는 성호를 송축하는 바로 이 비전문가의 궁시렁보다도 못할 것이며

그 뿌린 것으로 인하여  비전문가의 궁시렁 재료에 불리한 증거로 채택될 수 있으며

더 나은 변호인단들 몇백명 몇천명을 선임하더라도 비차 게임이 않될 것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감�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