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문가의 비평

사랑의 손 해석

알오시끝 2006. 1. 2. 21:32

오늘은 손입니다

발이 아닙니다

워낼 손과 발을 하나가 되어 일사 불란하게 살아있는 지체로써의

생동력있는 실천을 해야 하는데

발은 잠깐  쉬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축구하다가 태클로 인하여 부상을 당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때로는 이렇게 손과 발이  떨어져서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손이 사랑의 노래를 부르겠다는데

발이 하는말이 

"우리 인간적으로 그러지 말자 "

내가 노래만 부르라고 하던? "

 

"하나님의 말씀도 잘 듣는 마리아같이 행하라 이거지

마르다 처럼 하나님의 일을 몸으로만 봉사하지 말고  머리에서 나오는

말씀에 따라 마음과 영으로도 영혼의 양식을 먹어야 되지 않겠니? "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는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말고

균형을 이루며 성령의 봉사하라고 그랬잖오 "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말도 때에 따라 해야지  손이 지금 열심히 사랑의 노래를 부르겠다는데

성령을 훼방한다면 않된다는 것을 발은 알기에

기도 끝날 때 까지

찬양속에서 흘러 나오는 사랑의 고백과 간증과 기도속에

먼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바라고 원하는 가운데

영으로 드리는 찬송이 끝날 때 까지   기다리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을 소망을 이루는 줄 알기에

손이 움직이며 밥을 맛있게 차려주고  맛있는 후식을 줄 때까지

전쟁이 일어나는 뱃속이라도 잠잠하라 내가 먹고 마시고

옷입는 모든 염려를 책임지는 하나님이니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근심걱정 하지 말며 들에 핀 들국화를 보면서  모든 염려를 맡길 때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이른 비와 늦은 비 속에서 주시는 생명의 양식을

받아 먹지 않느냐  라는 말씀을 알기에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가운데서 조명하고 적용하여 배고픔을 달래고

있는 발의 아름다운 행보를 본받고 싶지 않습니까?

 

주객이 전도된 경우가 이것도 해당됩니다마는

아내가 교회가서 목놓아 외치며 사랑하는 남편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바쳐 헌신할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데

술 취해가지고 교회문  발로 차면서 들어와 끌고 가려고 하던 사람이

어느날 전도가 되어 예수를 잘 믿고 예배를 드리며 간증하는 경우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한 광경을 직접 목격하고 상담을 담당 했던 발이니까

말도 못하고 그저 내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묵상기도 하면서 영혼의 쉼과 더불어 주일날 복음을 전하고 예언자적 사명을

완수하고 육신적으로도 쉬고 있음을 볼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발이 빠진 손의 노래 사랑의 노래 써티 파이브가 되겠습니다

 

하이 파이브가 아닙니다

지금 손은 찬양하고 있기 때문에 하이파이브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손에서 흘러 나오는 심령의 향기를 맡아 보면서

비교 분석하여 손의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가

손의 사랑은 어떤 손에 이끌려야만이 손으로써 섬김과 봉사를 감당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  태의 열매를 상급으로 받아 귀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2006년도가 될지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1연 시작합니다

 

"

내 사랑의 손은 예술가의 손입니다

그가 가르키는 모든 곳은 

내 마음을 새롭게 창조 합니다 "

 

원래 이 시가 저쪽에서 비공개로 해석이 되고 비평이 되어야 되는 건데

길을 바꾼 이유가 있습니다

 시를 해석하려고 하는데

하필 그 때

바울이 아시아 전도여행을 바꾸게된 사정이 생각나는 겁니다

평상시때는 하나님의 말슴이 생각이 나도 별로 실천을 하지 않잖습니까?

 

예배때가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선하신 뜻이 무엇이냐

신령과 진정으로 거룩한 산제사를 드려라 라는 생각이 들면

주일이고 공에배가 있는 날이면 가야 될 것아닙니까

근데 잠을 퍼 자던지  애인하고 산에 놀러 가버리잖습니까?

술한잔 먹으러 가버리고

한마디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가다가 다시 뒤돌아서 

다른 길로 가버리는 말도 않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엄청많은데  너무나 이 비전문가의 이야기 하는 것 같아서

스스로 쑥쓰럽고 부끄럽기도 하고 쪽팔려서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그렇게 믿음에 대한 실천력이 부족한 제가

그날은 왜 그랬는지  인터넷 시 해석길을 바꿔 버렸다는 겁니다 

바울이야 성령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라지만

저의 경우는 왠지 삐지고 싶고 마음에 변화를 새로운 블러그 공간을 통하여

약간이나마 바꿔보자는 나의 음성을 들었다고나 할까요

 

원래 비전문가들은 말씀적용을 자기 마음대로 하는편입니다

그러니 이해  전문가들이 이해 해야지 누가 하겠습니까

 

그랬던 손가락이 지금 광야를 여행하다가 요단강 건너왔던지

야곱이 저쪽 갔다가 (어딘지 지명이 생각않남)  이쪽 (여기는 벧엘)

으로 옮겻다던지 아브라함이 저쪽갔다가 다시 이쪽으로 왔던지

그거하고 전혀 상관없는 손의 마음은 이래 저래  그 어떤 공간을

뛰어넘어  기도하던 손의 경건의 훈련속에서의 순종하는 법칙과

복종하는 법칙의 내공을 쌓았기에 머리가 하자는 대로

그저 따라서 제 3차원 손가락 이동을 하여 사랑의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는

예수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가운데 예수님의 손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럼 어떤 노래인지 다음시간에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