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과 9.24사이의 사과와 회개
애플이 아닙니다
오늘은 먼저 딸의 입장이 아닌 아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말씀 한 구절을 보기로 하겠습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전 3장
"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도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
요즘 18대 대선의 때가 과거사에 대한 마음의 정리를 요하는 때 인 듯 합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지었던 크고 작은 윤리 도덕 양심의 문제들을
백성들 앞에 드러내놓고 과오와 허물들을 용서해달라는 투의 사과들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원래 사과라는 것은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그 자리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야
모양새도 좋고 문제가 더 불거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만
일부 어떤 부류들은 사과를 미루고~~~미루다가 억지로 눈도 마주치지 않고
사과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밀양이라는 영화에서도 경우는 살짝 달랐지만 그 시기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상대의 마음을
역전에 역전을 시켜버리는 작용을 하기도 합니다
특히 국가에서 중대한 일을 하시는 분들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러하죠
백성들의 안위가 왔다 갔다 하거든요
어떤 목사님은 배를 운전하는 함장에 비유해서 선택의 문제를 말씀하시기도 하는데
혼자 만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문제 그리고 최소한의 사람의 생명의 문제와 관계의 문제가 얽히면
사과한번 하기가 껄적지근합니다
미국이나 중국 일본 영국등
그 나라의 짱들을 보면 웬만하면 사과하지 않습니다
또 언론방송의 짱들을 보십쇼
뭘 그리 자존심들이 센지
누가 봐도 잘못한 줄 아는데도 버티고 버티다가 쪼~~~~끄만 네모난 화면에
후딱 부여주고 얼른 치워버리는 것을 자주 보잖아요?
부부간 부모 자식간 친구사이 애인사이 직장동료사이 등등등
그중에 하나님과 인간의 사이에서도 수 없이 많은 문제들이 돌고 도는 가운데 과거 현재 또 미래까지
우리 인간들이 짊어지고 가야할 짐들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 오라 라고 하십니다
교회로 오라고 말씀 하시지 않았어요
어차피 교회는 망하게 되어 있으니까 머리이신 예수안에서 그분이 주신 양분을 먹고
피차 먹고 마시며 즐거워 하자는 거지요
원래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에게 나타나는 거의 일반적으로 현상이니까요
나는 왜 이럴까 도대체 왜 이렇게 비겁하고 바보같고 줏대도 없고 지혜도 없을까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하여야 할지 선택할 능력도 없고
죄가 죄인줄도 모르겠고 내가 하면 죄같은데 남들이 하는 것 보면 왜 그리 목적을 위하여
저리도 뻔뻔하고 금강석같은 이미에 반짝이는 금은보석의 치장품들인지
로맨스와 불륜사이에서 날마다 수시로 계~~~속 두 마음을 품고 기득권을 누리는 자들의 적반하장이던지
첫날의 정결함이 다 몇분의 실수로 인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이 불공평함을
어떤 노무시키들이 위로해주고 마음을 같이 해줄까 등등등
다 똑같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악하다라는 명제를 제시한 사도요한의 입장에서
살짝 각도를 틀어서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세상을 들여다보면
완전히 악하던지 완전히 선을 행하던지 둘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거지요
가장 안타까운 사람들이 악한 것도 아니고 선한 것도 아니고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감정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것이죠
그러고 보면 기독교라는 곳이 세상위에서 긴긴 시간동안 뻐팅긴 이유가 다 있습니다
중간에 예수를 모셔다 놓고 예수안에서 다 해쳐먹어 버리니
죽이지도 못하고 살리지도 못하고 진짜로 그 이름으로 인하여
다 죽어 가는 놈들을 다 살려 놓았으니 이거 어떻게해야 될지
자고로 기독교인들은 예수으로 찬양과 감사와 기도와 각종 좋은 것은
다 갖다 드려도 모잘를 것입니다
예수 안에다 자신들의 모~~~~든 악한 것과 더러운 것과 온갖 추접한 행위들을
다 감추어 놓았다닌깐요?
이런 분과의 관계를 유지 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사과로는
않되죠
바로 회개를 해줘야 합니다
사람과의 사과와
예수와의 회개와의 차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지만 사람에게 행하는 사과에 대하여
상대방들의 입장차이가 있죠
참과 거짓이라는 진실성의 문제가 대두되는 이유가 다 있습니다
참 인줄 알았는데 거짓이었다는 진실을 알면
그 진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 것과도 같은 현상이죠
거짓을 통하여 세워진 것과 참을 통하여 이루어져 가는 것과의 확연한 차이점이라고
보시면 정통과 이단의 끝이 다른 이유역시도 이해가 갈 겁니다
거짓을 선포하고 사과와 회개를 할 때 손가락질을 하는 자들이 누구겠습니까
바로 그 옆에서 후루룩 짭짭짭 입맛을 다시며 기득권을 누렸던 바로 그 노므시키들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서기관과 바리새인 종교지도자들 이었다는 거 아니겠어요?
자신들의 구심점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이 참을 수 없는 것이죠
이들은 예수를 모릅니다 성령도 모르죠
알면 다치거든요
예수는 가난하고 병든자들 세상에서 버림 받은 자들을 위해 자신이 희생했습니다
혁명 개혁의 수단과 방법이 남다른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