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해라 많이 묵었다 않카나
친구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킵온러닝속을 달리던 학생 머스마들이 삐딱선을 타기도 하고
자신의 목표를 향하여 질주하는 과정속에서 재래시장 아짐들
거대한 자본속에 묻혀가는 것도 모르고 사과 하나 띵가 먹기도 하고
귤하나 더해서 오징어 다리에 막갈리 한잔 하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습니다
"고마해라
이제 소자본 영세업자들과 중소기업 서민들 거의 죽어가고 있다 않카나 "
라는 소리도 들려 오는 듯 한데
굳이 변명을 해보라고 기회를 줘볼까요?
" 제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잘못을 했습니까?
미국의 러만 브러더스와 무슨 삭스와 월가의 금융권 보다 더 문제를
일으켰단 말입니까 우리는 이제 시작했을 뿐이고
아직 거기까지는 가지 않았고 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속에서 규제와 통제를 뛰어 넘어
법에따라 소신것 투자를 했고 상품들을 팔았으며 동물의 세계처럼 힘의 원리에
충실했을 뿐이고 똥묻은 놈이나 겨 묻은 놈이나 그 놈이 그놈 아니겠습니까?
다만 진 자는 이긴자의 종이 된다고 적용능력이 워낙 부족해
챙기는 데만 힘과 정성과 성품과 마음을 다했고 베푸는 이성과 감성에는
일반 동물들과 다를바 없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제가 왜 죄인이라는 소리를 혼자만 들어야 합니까"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자 되고 싶을 뿐입니다"
기가막힙니다
이 양반은 하나님께는 용서를 받고 자유로운 사람인데
사람들간에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지 않나 생각하게 하네요
땅에서 풀려야 하늘에서 풀리듯이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일단 먼저 영접을 하시는 것이
순서가 될 것 같은데 드러냄속에 감춰져 있는 어둠의 시간들을 성령으로 조명을 받아 보심이
친구라는 개념이 바로 서게 되겠습니다
"고마해라 많이 묵었다 "
누가 이 말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의 내용들이 영화처럼 흘러가게 되는데
칼이라는 것이 누구에게 쥐어져 있고 누구를 향하여 사용되고 있는가
21세기 이 어려운 시대를 맞이하여 깊이 생각해 보는 오늘이 되었으면 좋겠군요